그런가하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도 항상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거나 누군가의 마음이 언뜻언뜻 느껴질 때면 그 나름대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알게 된 누군가의 세계관이 매력적인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우리가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한 번만 더!'를 외치며 그 사람이 가진 다른 부분들을 살피고자 애쓴 적도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내가 앞서 결론지었던 이유를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시시때때로 연애가 성사되는 결정적인 요소는 타이밍이기도 했다. 서로 호감이 있고 더 깊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는 촉이 왔지만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기라 상대가 만남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3주 정도 지나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땐 회사를 이유로 상대방과 먼 쪽으로 이사를 결심하게 된 터라 도무지 만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만남이 시작되더라도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상대가 별로인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때,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한참 후인 경우도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상대가 내 눈에 들어오고 그 사람의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함께하고 싶은 때가 덜컥 오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사귀게 된 경우도 있었으니 인연도 다 때가 있는 것이구나 싶다.
요즘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과 달리 쉽게 마음에 불이 붙지는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호감이나 취향, 상대를 향한 열정을 넘어서 서로의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서로의 세계에 끌리고, 영혼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 서로의 꿈과 삶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이를 만나고 싶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을 가진 사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가꿀 줄 아는 사람, 삶 속에서 여러 방면으로 경험의 폭을 넓혀갈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연결된다. 거기에 덧붙여 비슷한 속도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품는 상황이 일어나려면 그건 가히 기적이라 할만한 수준의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좋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어도 좋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결이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아볼 수 있다면 누가 먼저 손내미는 것이 중요할까 싶은 것이다. 그것이 내 삶에 일어날 기적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게 되어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홀로인 지금의 삶 또한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 삶을 가꾸는 것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당장 함께 같은 보폭으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나갈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 모두가 선망하는 무언가를 향한 발걸음이 아닌, 나다운 것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한껏 스스로를 고무시키는 느낌이다. 지금은 언젠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볼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