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내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둘 중 어느 쪽의 입장에 가까운지를 생각하게 된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제법 묵직하지 않은가?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삶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혹시 지금 내 곁에 존재하는 가치있는 것들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쭉 돌이켜보면 나는 대체로 삶을 음미하기보다는 늘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달려왔다.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고, 풍경을 보자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소소한 일들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곤 했었다. 마치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듯이, 그런 순간은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듯이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적립한다고 오늘치의 행복이 내일 두 배가 되어오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정작 아차 싶었던 것은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서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다. 일상을 줄여가며 내가 도달한 곳에는 내가 원하는 게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 너무 큰 희생이 따랐다. 그 때야 비로소 나는 진심으로 과거의 어떤 결정을 후회했다. 내 곁에 머물렀던 소중함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전까지는 인생의 모든 경험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경험이든 그 자체로 다 가치있고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란 경험은 모두 다 가치있다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던 것을 상실하고 난 후로는 "경험이 나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종류의 경험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경험은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던 일부가 산 채로 뜯겨져나간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아프게 값을 치룬 인생의 교훈, 과거로부터 나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2022년의 이윤성은, 2012년의 이윤성보다 괜찮은 사람일까? 얼마 전 절친인 J와 얘기를 나누면서 문득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했었다. 막연히 10년 전의 나를 만나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설명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살펴보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10년 전의 내게 지금의 나를 설명하려면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10년 전의 내가 좋아할 이야기만큼 실망할 이야기의 가짓수도 많아보였다. 10년 전의 내 가치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들도 분명 존재하리라.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떨 것인가?..
다시금 한참을 앞만 보고 달리던 차에 오랜만에 이 글을 꺼내 다시 읽어봤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오늘치의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여전히 삶이 한 편으로 기울어있기는 하다. 야근을 밥먹듯이 했던 이전과 다르게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큼은 칼같이 끊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잘한 것인지도 조금 고민스러운 요즘이다. 스스로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애정을 품고 열일하던 개발자에서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장인1의 배역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새로이 자아실현하겠다며 퇴근 후의 삶을 여기저기로 펼쳐드는 일은 지속 가능한 일일까? 어딘가 요즘 지쳐있다는 생각이 든 건 마음이 아픈 일을 겪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소모된 까닭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 주간 글도 쓰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일상의 루틴을 비껴나 현생을 내려두고 살았다. 나를 잊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진하게 몰입한 시간들이었다. 한 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서야 다시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바닥을 치면 올라오는 일 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가보다. 삶 여기저기를 비워내고 나서야 다시금 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오늘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누려가며 살아봐야겠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어하던 모습으로 하나둘 채워가보자. 휴식이 필요할 땐 푹 쉬기도 하고(사실 제일 필요한 부분이 이것인 것 같기도 하다). 의외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